+더페스티벌 즐겨찾기 추가
  • 2024.12.20 (금)
 축제뉴스 축제뉴스전체
섬진강 에세이 (94)
느리게살기 기자    2012-11-05 17:19 죄회수  3999 추천수 1 덧글수 3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마지막 여울에서 아침을 맞다.

          (화개장터~평사리)



화개장터부터 섬진강은 그 하얀 속살을 드러내 놓기 시작한다.

섬진강이 섬진강다운 것은 그 속에 곱디고운 은모래가

섬진강의 속살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섬진강에서 모래톱을 처음 만날 수 있었던 곳은

남원 대강면 향가마을 향가유원지였다.

어린아이 궁둥이 정도 될까 할 정도로 작은 이 모래톱은

섬진강이 그 가녀다란 허리를 살짝 돌아설 때 여름 햇빛에 빛났었다.


그 뒤로 섬진강은 좀처럼 그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이제 화개장터에서 옥화의 헤푼 웃음과 팔도인생을 만난 후

가식 없는 그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세상에 보여주기 시작했다.


남도대교 아래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은어천국이다.

회귀어인 은어는 이곳 남도대교에서 여름과 가을을 보낸다.


보리이삭이 만삭되어 배가 불룩해 올 즈음에

은어는 보리향기를 맡으며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 남도대교에서 그 천진난만한 세월을 보낸다.

 

구례 간전면과 광양 다압면, 하동 화개면이 만나는 지점에 이르면

구례와는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그 질펀한 들판, 노고단의 그 너른 가슴, 길지중의 길지 사성암,

사람 사는 냄새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운조루,

내가 희생해야 타인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석주관성의 칠의사....

모두들 나에게는 스승이었다.


지금까지 천 번 만 번을 지났었지만

피상적으로 지나다닐 때에는 깨달을 수 없었던 구례의 정신을

섬진강을 걷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

섬진강이 내게 스승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남도대교 바로 아랫동네 영당마을을 지나 중기, 신기 그리고 검두마을에 접어든다.

강 건너 전라도는 구례 하천마을을 지나 광양 금천, 죽천으로 이어진다.


한번 씩 강을 건너 광양 다압면에서 하동을 바라보면

일찍이 내가 본 하동이 아닌 듯 생소 해 보인다.

광양사람이 하동에 와서 보는 광양의 모습 또한 같으리라.

강 건너에서 바라본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의 본 얼굴인 것이다.


이처럼 광양과 하동은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의 얼굴을 바라 볼 수 없고

오로지 너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네가 본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이다."

"떠나 있어야 나를 알 수 있다"


강 건너 금천마을에 잔치가 생기면 바로 검두마을은 괜히 마음이 들뜬다.

검두마을에 초상이 나면 금천마을은 내일처럼 슬퍼한다.

마을이장들이 아침마다 마을 앰프를 통해서 알리는 소리들을

강 건너 검두와 금천은 내 동네처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쪽과 저쪽은 사돈이 많다.


형제봉과 백운산이 강을 사이에 두고 형제처럼 서 있다.

화개 쪽 산자락은 녹차군락지다.

사시사철 푸른 녹차 잎을 통해서 차향을 느낄 수 있다.


강 건너 광양 다압은 우리나라 최고의 매실산지다.

봄의 전령사 매화가 필 때면 꽃 반 사람반이다.

4월의 섬진강은 꽃동네 새 동네를 연출하고 5월은 다향 가득 산자락이 향기롭다.

 

이제 섬진강은 남해바다로 귀향을 위한 마무리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팔십 리 길 하동포구만 통과하면 종착점인 노량이다.


이제 그의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할 시점이다.

상처 난 몸도 치유를 받아야 한다.

온갖 잡음으로부터 씻음도 받아야 한다.


귀향을 앞두고 그의 몸과 마음을 준비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화개면과 악양면의 경계인 검두마을 제방 앞 <마지막 여울>이다.


아직 새벽미명, 구제봉으로 해가 솟아오르려면 반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공기는 겨울처럼 싸늘하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섬진강에는 짙은 안개가 내려앉아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검두마을 앞에서 섬진강은 크게 또 한 번 휘감아 돌고

강 한가운데는 거대한 모래섬이 형성되어 있다.


그 주변에는 강물이 모래와 자갈로 얕아져 여울을 만들었다.

여울위에서 가느다란 수증기가 올라온다.

강물이 밤새도록 모래와 자갈에 몸을 비볐기 때문에 생겨난 열기가 아닐까?

이별을 앞두고 서로 밤새 뜨거운 사랑의 밀어라도 나누었으리라!


<마지막 여울>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옥소리 같다.


이윽고 구제봉위로 태양이 떠오를 전조다.

하늘이 붉어지더니 이내 태양이 올라와 형제봉에 쏘아 붙이고

반사된 그 빛이 사선으로 섬진강에 내려꽂힌다.

마치 무대연극을 위해 강력한 조명이 내리 쪼이는 것처럼 ...


섬진강물도 따라서 붉어진다.

평사리에서 시작된 홍조가 외둔삼거리를 거쳐 곧장 검두 제방아래

마지막 여울목으로 도미노처럼 점령해 온다.


이 순간의 시간에 일어난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의 느린 동영상처럼

세밀하고 명확하다.

태양에 비치는 여울은 그 잔물결이 마치 비늘처럼, 새털처럼 가벼워

하늘로 날아 갈 것 같다. 

마지막 여울에서 한껏 몸을 낮춘 섬진강,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오로지 어머니 품과 같은 바다로의 귀향을 꿈꾼다.

이런 다짐을 하면서....


인생 여정 마치는 날 까지

정결한 몸으로,

나를 낮추며,

타인의 목소에 귀 기울이리


비록 차가운 밤을 지날 지라도 물위에 수증기 피워 올리듯이

내게 주어진 삶을 뜨겁게 태우리.....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하동 조문환,섬진강편지,남도대교,광양매실,다압,평사리,화개장터
 이전기사      다음기사   메일       인쇄       스크랩
  목록으로 수정    삭제
덧글쓰기 댓글공유 URL : http://bit.ly/2M76Hh 
뭉게구름   2012-11-07 11:57 수정삭제답글  신고
노량으로 흐르는 섬진강 줄기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녹아서 들어갔을까..
옛애인   2012-11-05 22:42 수정삭제답글  신고
사진이 정말 아름다운.. 모든 한국인의 고향산천을 의미하는 따뜻한 그림 섬진강이 참..
축제포토 더보기
인터뷰  
지역브랜드 전문가적 관리가 필요...
2009년한해동안정말많은축제들이열렸다....
인기뉴스 더보기
우리고장 국가유산활용 2024우수사...
일산동구 웨스턴돔 라페스타 공연 ...
함상 테마파크 서울함공원 올해 50...
축제리뷰 더보기
계룡저수지 산책로 계룡지둘레길...
밤 깊은 마포종점 축제로 새롭게...
만두도시 만두성지 원주만두가 ...
강경젓갈축제 상월고구마 찰떡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