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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의 지리산별곡 제4호 숲속에서 풍금을 쳐요 우리
조문환 기자    2017-07-31 11:15 죄회수  4585 추천수 4 덧글수 3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숲속에서 풍금을 쳐요 우리!

(본촌~위태마을)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봄은 단지 하나의 형상일 뿐이다.

진짜 봄은 보이기 이전에, 아니 그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고 존재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계곡 음지에서,

그리고 잠자는 듯 한 나의 마음속에서…….


봄을 향한 요동치는 몸부림이 있었기에 봄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그럼으로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봄이 왔다 할 것은 아니다.

봄을 잉태 해 내기 위한 동토의 땅속 깊은 곳에서 봄은 이미 존재했었다.

그래서 진짜 봄은 춘삼월이 아니라 차라리 동지섣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 우리가 봄처럼 맞이하여 즐기는 초현실적인 문명도,

고도 영양에, 고도 비만의 사회가 된 것도,

동토와 같은 땅속에서 문명의 꽃을 피워내기 위한

요동치는 몸부림의 결과이리라.

그럼으로 꽃에 대한 찬사도 좋지만,

그 꽃을 피워내기 위해 분투한 세월에 더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부모님들도 후손의 꽃을 피워내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불태웠으니 경의와 존경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아침햇살에 숲길로 들어서는 입구의 대나무 숲이 빛났다.

그 빛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하동호건너 칠성봉이 부채를 펼쳐 놓은 듯하다.

이로 인하여 북으로부터 불어오는 찬바람이 멈춰 섰고

사선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계곡은 음양으로 양분되었다.

그 모습이 마치 시골영화관에서 영화필름이 돌아가면서 만들어 놓은

흑백 톤의 음영을 보는 듯하다.

그 빛에 자작나무, 그의 하얀 살결에 눈이 부시다.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는 어디서 그 에너지가 나오는지 늘 궁금하다.

때로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입고 벗고 하는 일상도 좋아 보이는데

소나무는 그런 모습을 감추는 듯 하여 애처롭기도 하다.

바늘을 찔러도 피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던 도토리나무도

이젠 물이 오를 것 같다.

그래야 올 가을에 토끼며 다람쥐며 숲속의 식구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다.

오솔길 옆에 거의 죽은 듯 서 있는 돌배나무 뿌리 언저리에

이끼가 푸름을 자랑하고 솜털 같은 더듬이로 햇살을 향해 숨을 쉬고 있다.

이처럼 양이터재로 오르는 숲길은 하나의 살아 있는 자연박물관과도 같다.

계곡의 왼쪽으로는 재가 끝나는 지점까지 계속하여 물이 흘렀다.

그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어디 이만한 오케스트라가 있을까 싶다.

옛날에는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음이 분명하다.

군데군데 사람의 손으로 쌓아 놓았을 돌무더기와 돌 축대,

그 위에 위태롭지만 늠름하게 서 있는 나이 먹은 감나무,

그리고 어김없이 그 주변을 지키고 있는 작은 대나무 숲,

아직도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하다.

감나무와 대나무가 산에 있다면 십중팔구는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양이터재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더 정감이 있다.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에서는 향기가 진동한다.

그 곧은 나무를 안고 귀를 그의 몸에 대어보면

졸졸졸 물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대나무 숲에서는 정자세로 앉아 명상도 해보고,

대나무 이파리가 스치는 소리를 따라 나도 같이 날아가는 상상도 해본다.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는 분명 다르다.

대나무 바람소리는 꼭 사람 발자국 소리 같다.

내 어릴 적 혼자 집을 지킬 때 대나무 숲에서 나는 소리로

누군가 집으로 들어오는 듯 하여 두려움에 자주 문을 열어 봤었다.

소나무 가지에서 나는 소리는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청아하게 들리는 그 소리는 옛날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를 닮았기도 하다.

상수리나무에 난 옹이에서는 세월의 냄새가 풍겨난다.

상처를 곱게 치유한 인고의 세월이 차라리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모습이다.

가끔씩 빽빽한 숲 사이로 파고들어오는 햇빛에

숲속의 오솔길은 초등학교 교실 한쪽에 자리 잡은 낡은 풍금건반이 되었다.

저 풍금에 맞춰서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노래를 불렀었지…….

재를 넘어가는 먼당의 빈 새집에 새가 돌아오면

계절은 또 바람을 타고 여름으로 달릴 것이다.

양이터재 넘어 궁항과 오율을 지나 지내재를 넘으니

저 멀리 위태마을이 오후햇빛에 나른한 하품을 하고 누웠다.

꿈결 같았던 양이터재 숲길,

올 가을 아기 손 같은 단풍잎이 물들 때 내 다시 오리라!

그리고 숲속 풍금에 맞춰 노래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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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빛   2017-07-31 20:16 수정삭제답글  신고
자연의 계절적 변화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감성이 이런데서 나오는 것이라서 참좋으네요
뭉게구름   2017-07-31 19:27 수정삭제답글  신고
풍금소리가 숲속에서 들려오네요 노래를 흥얼거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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