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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릉단오제의 개선방안 모색
TheFestival 기자    2017-05-31 22:14 죄회수  9943 추천수 6 덧글수 3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강릉 단오제의 개선 방안 모색


- 기고 : 최정철

2016 수원화성문화제 총감독

2017 전주대사습놀이 총감독

 




(1) 개요

단오 날을 전후해서 펼쳐지는 강릉의 향토 제례 의식

· 대관령 산신령과 남녀 수호신들에게 올리는 제사를 비롯해서 며칠간에 걸쳐 강릉 단오굿을 시행한다.

· 전통 음악과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 민속놀이 등 전승 연희 종목들이 시연된다.

특징

· 한민족 최고(最古) 역사를 간직한 민속이다.

·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제사가 중심 행사다.

- 대관령 산신 : 김유신 장군(595~673)

- 남 국사성황신 : 범일국사(810889. 조계종 시조)

- 여 국사성황신 : 강릉 정씨 처녀

강릉에 딸을 둔 정씨 성을 가진 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꿈에 대관령국사 성황신(범일국사)이 나타나 자신의 딸과 혼례를 치르겠 다고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곱게 단장하고 마루에 앉아 있자 호랑이가 나타나 딸을 업고 사라졌다. 정씨가 국 사 성황당에 이르니 이미 딸은 서낭신과 혼례를 치르고 죽은 사람 이 되어 성황신 옆에 서 있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남녀국사 성황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올렸다. 이것을 강릉단오제의 효시로 추정하 고 있다. 정씨의 딸이 호랑이게 업혀가서 성황신과 혼례를 치른 날 이 음력 415일이므로, 지금도 이 날이 되면 두 신을 함께 모셔 제사지낸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유교와 무속의 공존(共存)

- 옛 기록에 의하면, “양반과 관속, 상민 등 수백 명이 참여해서 범일 국사와 관련된 여러 성황당에서 함께 제사 거행, 수만 명의 구경꾼이 집결했다.”

· 유일한 무언극(無言劇) 강릉관노가면극이 시연된다.

- 몸짓과 춤으로만 극을 진행하는 대사 없는 유일한 무언극

- 해학과 재미가 넘쳐나는 탁월한 극적 예술성 보유

· 공연예술의 진수를 보이는 강릉 단오굿이 시행된다.

- 세습무 참여

: 여무는 춤과 노래를, 남무는 무악 반주를 맡는다.

- 뛰어난 예술성으로 판소리, 농악, 민속춤, 민속음악 등 전통 연희의 기반이 되었다.

· 전국 최대 규모의 난장을 운영한다.

- 최대 500동까지 개설

- 난장 규모의 방대화 이유

: 태백산맥으로 가로막혀진 지리적 환경강릉, 삼척, 동해 등의 영 동 지방과 영서 지방 간 교류에 어려움함경도 지방과 경상도 지 방까지 연결되는 거래 장소로 강릉이 대표적인 곳이 되어 성장(5 장으로 확대)

- 오늘날 난장의 주요 품목은 이불이다.

: 전국 숙박업소 사람들이 몰려들어 각종 이불 세트를 구입해 간다.

 

(2) 탄생

단오의 옛 명칭

· 수릿날(높은 날, 신의 날의 뜻)

문헌 기록

· 삼국지위지 동이전

- “강릉은 부족국가인 동예(東濊)’의 옛 땅으로, 천제(天祭)를 거행하 , 남녀가 모여 술 마시며 함께 춤추는 무천(舞天)’이라는 축제가 있 .”

· 고려사열전 왕순식 조

- “고려 초 태조 왕건을 도운 대관령 신령에게 왕순식이 제사지냈다.”

- 이 기록을 볼 때 고려시대부터 대관령은 영동지역 신앙의 중심지였 음을 알 수 있다.

·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1603년 단오를 맞이해서, 대관령 산신을 제사했다.”

· 조선시대의 강릉단오제는 관에서 주관하고 민중들이 참여한 읍치(邑治) 성황제 형태

- 마을 수령을 중심으로 관아 이속(吏屬)들이 조직, 무속신앙을 믿는 민중들이 함께 하던 관민 합동 축제의 원형이었다.

- 읍치 성황제 형태는 현재 유일하게 강릉단오제에만 흔적이 남아있다.


(3) 성장

일제강점기 1909, 강릉시내에 있던 대성황사(大城隍祠, 대성황당) 철거

· 관민 공동 행사였던 강릉단오제 내용이 심각하게 훼손당했다.

· 일제강점기 동안 중앙시장 상인 중심으로 소규모로 명맥을 유지했다.

현재 남대천 둔치에서 실행

· 유교식 제사와 무당의 굿으로 대관령 산신, 대관령국사 남녀 성황신을 모시는 제의와 관노가면극놀이, 굿이 전승되고 있다.

1967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

1975년부터 민간단체인 강릉단오제위원회 주관, 범 국민적 축제로 정착

200511, 유네스코 지정의 인류구전 및 무형 유산걸작으로 등재

 

(4) 운영 체계

의식

· 신주(神酒) 빚기, 대관령 산신제, 대관령 남녀국사 성황제, 영신제(迎神 ), 영신행차, 봉안제(奉安祭), 조전제(朝奠祭), 송신제(送神祭), 단오굿 등

민속놀이

· 오독떼기(강릉 지역 전승 민요), 관노가면극, 그네뛰기, 씨름, 농악 경연 대회, 창포 머리감기 등

난장

· 최대 500동 임시 점포 운영

- 기존의 1000여 개 상가 운집(170종 상품)

수익성

· 해마다 100만 명 방문

· 500억 원 경제효과 창출

 

(5) 제작 체계

일정 구분에 따른 의식과 놀이 시행

신주 빚기를 시작으로 해서 음력 41일을 초단오로 삼아 이후 며칠 간격으로 2단오~3단오~4단오~5단오~6단오~7단오~8단오로 구 분해서 각종 의식과 놀이를 시행한다.

 

신주(信酒, 일명 조라) 담그기

· 음력 320일 칠사당(七事堂)에서 제사용 술 제조

- 신주근양(神酒謹釀)이라고 한다.

· 강릉 시민의 자발적 헌미(獻米)

· 옛날에는 호장(戶長, 마을 촌장 개념으로 우두머리 아전. 단오제에서는 부사보다 상위 지위를 부여받음), 부사府使), 수노(首奴, 우두머리 노비), 서낭맹(城隍盲, 우두머리 박수), 무녀가 목욕재계하고 술 단지를 봉해서 호 장청의 하방(下房)에 두었다. 근래에는 제물을 준비하는 도가(都家)에서 술 을 빚어 보관한다.

강릉 주민들에게는 이러한 성스러운 참여 의식이 있기에 강릉단 오제가 국내 현존 최고(最古)의 단오제로서 장구히 그 맥을 이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초단오(初端午)

· 음력 41일이 되면 사시(巳時, 오전 9~11)에 큰성황당(큰서낭당) 헌주(獻酒, 술을 올림)하고 굿을 치른다. 초헌은 호장, 아헌은 부사, 삼헌은 수노, 종헌은 서낭지기가 맡았다.

· 무당들이 산유가(山遊歌)를 부른다.

· 관노들은 태평가를 부른다.

· 미시(未時, 오후 1~3)에 끝난다.

2단오

· 음력 48, 석가탄신일이 되면 초단오 때와 동일한 내용으로 큰성황 당에서 헌주하고 굿을 한다.

3단오 전날

· 음력 414, 저녁에 남성황신을 모시러 대관령으로 행차한다.

· 옛날에는 행렬 선두에 16명의 악공(樂工)이 앞장섰고 그 뒤로 호장, , 수노, 도사령(관아의 우두머리 심부름꾼), 남녀무격 5060명이 따랐 . 모두 말을 탔으며 수백 명의 마을사람들이 뒤를 따라 장관을 이루었다 한다.

· 행렬이 대관령 구산에 도착하면 그 지역 사람들이 밤참을 준비해서 일행 대접한다.

· 산중턱 송정(松亭)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닭이 울면 다시 행렬이 출발 해서 대관령국사 ()성황당에 도착한다.

3단오

· 음력 415, ()성황당과 성황당 동쪽의 대관령산신당에서 제사지낸 .

· 제사 후 근처의 칠성당과 우물에서는 용왕굿을 한다.

· 소지(燒紙)로 굿을 마친 후 전원 음복하고 갖고 간 물건들은 모두 버린 .

· 성황당 근처에서 무녀가 굿을 하고 주변의 나무들 중 한 그루가 신들린 것처럼 흔들리면 신칼로 베어 신간목(神竿木)으로 삼는다.

· 신간목과 남성황신(범일국사) 신위를 앞세우고 하산해서 구산에 이르면 (이때쯤이면 저녁시간) 강릉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마중 나온다.

· 행렬 일행은 여성황신(정씨 처녀)의 생가(정씨가)에 잠시 들른 다음 여성 황당에 가서 성황신 내외를 합사하는 영신제를 올린다.

영신제에 이어 남녀 성황신을 합방시키는 봉안제를 거행한다.

원래 영신제와 봉안제는 일제에 의해 철거된 대성황당에서 거행 것이다. , 남녀국사 성황신을 대성황당에 모셔야 하는 것을 대성황당이 없어졌기에 부득불 여성황당에 두 성황신을 모시고 영 신제와 봉안제를 거행하고 있다.

- 먼저 유교식으로 치른 후 굿이 이어지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유교와 무속이 공존하는 형태다.

동제에서도 이러한 형식을 취한다.

원래 영신제는 음력 415일에만 치르는 것인데 대성황사가 없 어진 이후 대성황사 제사 대신 이 영신제를 음력 53일 한 번 더 치른다.

영신제를 치른 후 다음날인 음력 416일부터 56일 제사가 끝날 때까지 21일 동안, 매일 새벽이 되면 호장, 부사, 수노, 서낭 지기, 무당은 국사 성황신에게 문안을 드렸고(조전제), 주민들은 직 접 큰성황당에 가서 치성을 드리거나 단골무당을 시켜 치성을 드리 고 소원을 빌었다. 상인들은 장사가 잘 되기를, 농가에서는 풍년이 들기를, 어부들은 풍어 이루기를 빌었다.

오늘날의 조전제는 음력 54일부터 7일까지, 남대천 단오장의 가설 성황당에서 매일 아침 9시에 거행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각 기관장과 사회단체장들이 제관으로 참여하면서 무속을 제외하고 유교식으로만 치른다.

4단오

· 음력 427, 무당들이 여성황당에서 굿을 치른다.

5단오

· 음력 51, 화개(花蓋)를 만들고 관노들의 탈놀이와 단오굿이 본격적 으로 시행된다. 음력 55일 단오날까지 굿당에서 매일 무당들의 굿과 관 노의 탈놀이가 계속된다.

화개는 괫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성황당에 모셔진 신간목의 대용품이다. 옛날에는 부사청(府司廳)에서 만들었다. 영신제 이후 신간목을 여성황당에 모시게 되면 대용품인 괫대가 단오제 기간 동 안 행해지는 각종 행사에 모셔진다. 화개 형태는, 대나무를 직경 6 (1.8m) 정도로 마치 수레바퀴처럼 둥글게 휘도록 고정시켜서 긴 장대 위에 달아맨 후 대나무 원형 틀에다가 오색 천을 늘어뜨리게 만든다. 원래 화개는 높이가 30(9m)정도였고 무게는 20kg정도나 되었다고 한다.

화개가 수레바퀴 모양을 취한 것은 단오의 다른 명칭인 수릿날 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수리높은 신을 뜻하는 우리말로, 수레로 음사되었기에 수레바퀴 형태를 취한 듯하다. 단오날 먹 는 떡 이름도 수리떡, 수레떡이라고 부르고 모양도 수레바퀴처럼 동그랗다

영신행차

· 음력 53, 남녀 성황신 신위와 신간목을 앞세운 행렬이 강릉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남대천 단오장으로 행차한다.

· 행차가 단오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단오행사는 절정에 이른다.

6단오

· 음력 54, 단오굿과 관노가면극놀이를 행한다.

7단오

· 음력 55(단오 날. 1년 중 양기가 가장 센 날)이 되면 대제(大祭) 올린다. 대관령에서 남성황신(범일국사)을 모실 때처럼 행렬을 꾸민다.

· 옛날에는 화개를 앞세우고 큰성황당을 출발해서 약국성황(藥局城隍)~소성 (素城隍)~시장~전세청(田稅廳)~대동청(大同廳)~사창청(司倉廳) 등을 순회하면서 굿을 치른 후 화개는 여성황당에, 신간목은 큰성황당에 봉 안했다.

· 단오 날에는 성황당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쳐서 부정을 제거한 .

· 단오굿과 관노가면극놀이가 계속 시행된다.

8단오

· 음력 56, 큰성황당의 뒤뜰에서 소제(燒祭)를 행한다(송신제).

- 신간목과 화개를 비롯, 단오제를 위해 만든 모든 것을 불태운다.

· 남녀 성황신을 각각 여성황당과 대관령 ()성황당으로 다시 모셔가는 봉 (奉送)을 마치면 근 50일에 걸쳐 치르는 단오제가 끝나게 된다.

 단오 굿 진행 순서 소개는 생략

 

(6) 문제점

대성황당 상실

·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

· 대관령 산신과 남녀국사 성황신 중심의 축제로 전환

· 영신제 반복 거행(음력 415, 53)의 원인 제공

- 원래 대성황당에 모셔진 신들은 모두 12신으로, 현재 강릉단오제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는 대관령 산신이나 남녀국사 성황신과는 또 다른 신격으로서 더 높은 자리에 있던 신이었다. 대성황당 제사는 큰 신을 봉안해서 제사를 받드는 조선시대 정통 형식인 관민이 함께 참여하는 읍치 성황제였다. 지역 공동체 의식을 단단하게 하는 의미의 제사였기 에 일제가 읍치 성황제로서의 의미를 없애려고 대성황당을 철거한 것 이다.

대성황당이 없어지기 전에는 음력 41일과 8일에 신주를 바치 고 굿을 행했다.

대성황당 외 약국 성황당과 대창리 성황당도 없어졌다.  

 

행사 공간의 이동

- 백영철, 관동민속학12.

 

· 대성황당과 약국 성황당, 대창리 성황당이 없어진 후 단오제 운영 공간 이 변했다.

· 원래는 강릉의 진산인 대관령을 중심으로, 신간목을 모시고 굿을 했다는 북쪽의 약국 성황사, 육성황신(肉城隍神, 성황신 중에서 유일하게 고기를 바치는 성황신으로 옛 동예의 창해역사를 이른다)과 소성황신(김시습)을 모 신 동쪽의 대창리 성황당, 12신을 모신 남쪽의 대성황당, 김유신장군을 모 신 서쪽의 대관령 산신당 순으로 제사가 치러졌다.

· 지금은 북쪽의 정씨 처녀를 모시는 홍제동 여성황당, 솟대를 모시고 굿 을 벌이는 동쪽의 강문동 진또배기, 단오행사의 중심지가 되는 남쪽의 남 대천, 김유신 장군을 모시는 서쪽의 대관령 산신당과 범일국사를 모시는 학산 성황당으로 바뀌었다.

이동형 축제에서 고정형 축제로 성격 전환

· 원형

- 대성황당~약국 성황당~대창리 성황당~제민원 성황당 및 시장~관청 등 거리 순회

· 현재

- 남대천 둔치 중심의 행사로 전락

- 과거 일제의 감시와 통제 단속에 의해 중앙시장 상인들만의 행사로 명맥 유지

행사 일정의 오류

· 원형

- 음력 51~6

· 현행

- 음력 51~8

고정형 축제성격에 의해 방만하게 운영되는 공연행사

· 70여 개 프로그램의 난무 현상

· 현대적, 서구적, 무개념적 구성

- 비보이 공연, 비행기 축하 비행, 종묘제례악 등

· 민속 프로그램 축소화

· 정체성 유실

- 국내외 공연단체 대거 유치

지나친 상업화

· 무절제한 난장 운영

집행조직 강릉단오제위원회의 문제

· 조직의 관료화 및 이익 집단화

· 폐쇄성 심각

- 강릉 시민 참여 배제

- 축제전문가, 역사학자, 종교학자, 신화학자, 사회과학자 등 전문가 그 룹 차단

· 특정 부류 사람들의 강릉단오제화 현상

· 행사 제작에의 무책임성

· 수익성 확보를 위한 난장의 대형화 추구

 

(7) 개선 방안

원형 복원과 한민족 고유 민속의 본질 회복

· 성황당 복원

- 대성황당, 약국 성황당, 대창리 성황당, 제민원 성황당

- 이동형 축제로 회귀

· 신위 재봉안

- 대성황당 12, 대창리 성황당 2

- 제례 복원

: 대성황사 12신위

전국의 주요 산악신(山岳神)

송악산지신, 태백대왕신, 남산당제형태상지신, 감악산 대왕지신, 김유신지신(대관령 산신)

지신(地神) 의미의 여신(女神)

성황당덕자모지신, 초당리부인지신, 연화부인지신, 산송계부인지신(추모의 친모 유화부인)

인격신(人格神)

이사부지신, 범일국사

성황신(城隍神)

신무당성황신(단오와 씨름 관련. 홍석모, 동국세시기)

: 대창리 성황사 2신위

육성황신(肉城隍神)

창해역사(장량과 함께 진시황을 시해하려다 실패한 동예 출신 역사力士)

소성황신(素城隍神)

김시습(조선의 생육신 중 1)

- 임동권, 한국민속학논고 1971, 강릉단오제.

불필요한 공연물 제거

· ‘강릉 돋보이기전략 강화

- 단오굿과 관노가면극놀이를 대표 프로그램으로 집중하는 것이 바람 직하다.

- 강릉에서만 볼 수 있는 강릉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 국내외 공연 단체들의 대량 유치를 자제해야 한다.

강릉 단오제 본연의 강렬한 주제 부각

· ‘범일국사의 애휼 평화 사상

· ‘연화부인과 무월랑의 인연불교 사상

· ‘이사부 장군의 국토 수호 사상벽사(僻邪) 기원()’

· ‘창해역사의 인간사랑 정신

· 굿의 치유 기능을 통한 신인합일(神人合 一) 사상

영신 행차 특화 전략 구사 검토

· 주민 참여의 행렬 경연 방식 도입

·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지역 축제 면모 확립 가능

난장 정리

· 과거 5일장 형태 복귀로 전통성 강화

· 지나친 상업성 자제를 통해 강릉단오제 본질 훼손 현상 차단

집행 조직 개선

· 강릉 시민과 전문가 그룹 참여 폭 확대

· ‘강릉단오제위원회의 문제의식 부족 시 새로운 조직 구성 필요

· ‘강릉단오제위원회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 및 유네스코 지원 창구 관리

  

이상으로 대한민국 지역 축제 중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강릉 단오제의 허실을 파헤쳐 보았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축제의 생명은 바로 원형 보존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새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원형이 있어야 변형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원형은 잊은 채 변형에만 파묻혀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다.

태그  강릉단오제개선방안,신주빚기,조전제,관노가면극,영신행차,최정철칼럼,성황당,산신당,강릉축제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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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스   2017-06-01 17:25 수정삭제답글  신고
축제 운영 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네요♡♡ 그런데 아니 그리고 뭐 요즘 축제 주관단체 다 그렇지 않나요~
우유빛   2017-06-01 14:17 수정삭제답글  신고
강릉단오제가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훼손되어 치러진다는 지적이군요~ 요즘개념없는 축제기획도 많지요** 그래도 축제프로그램은 퓨전콘텐츠도 좋은 시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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