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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땅 되찾고 싶게 하는 드라마 광개토태왕
마중물    2011-09-07 죄회수 6,179 추천수 2 덧글수 1  인쇄       스크랩     신고

 

고구려 태자 담덕 왕자, 훗 날 광개토태왕

 

  

 

 

 

"東北工程"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이것은 2003년의 한국 역사학계에 불어닥친 태풍이었다. 이것이 무엇이길래 한국인의 정서에 못을 박는 것일까? 하지만 단순히 고구려사 왜곡뿐만아니라 고조선(古朝鮮), 부여(夫餘), 발해(渤海)의 역사를 통째로 중국의 역사로 흡수하려고 하는 것은 왜곡이 아니라 "강탈"이다. 이 사실을 주지하고 우리는 동북공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측의 그릇된 역사인식이 감지가 되었으나 이렇게까지 왜곡을 할 줄은 우리 국민들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중국측에서는 역사적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른 채 만리장성에 갖혀 중화사상(中華思想)에 근간을 둔 정치적인 색채가 가미된 억지 연구 프로젝트를 꾸미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중국이 최근 정치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대체 어떤 것일까? 모든 연구의 목적은 중국변경지방의 영토, 외교, 패권주의적 민족주의 측면에서 고구려가 "중국사"라는데 근간을 두고 있다. 하지만 2,000여년 동안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와 몽골, 베트남 등의 주변국에서도 인정하는 "고구려는 한국사"라는 당연한 역사적 사실을 뒤집기 위해 "고구려는 중국사"라는 대전제를 세워 두고 논리를 역으로 대입하고, 각종 사서의 기록들을 자국의 이익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하다보니 논리적 모순과 허점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동북공정"이란 "중국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상황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東北邊境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인말이다.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국책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 산하)은 1983년 중국변방의 역사연구 목적으로 설립되어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꾸준히 마련하고 있으며 북한의 고구려 고분 UNESCO 등록에 즈음하여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2002년 2월 28일 발족시켜 동북 3성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연구대상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고구려=중국 변방의 민족정권". 이런 용어는 중국이 등소평(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을 시행한 이후 경제적 성과에서 얻은 자신감을 통해 한국을 서서히 무시해도 괜찮다는 과거 중화사상의 민족성(民族性)이 표출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역사상 중국이 고구려에게 치욕적인 패전(고수전쟁, 고당전쟁 등)을 한 것을 제외하면 한국에 대해 우위를 점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중국은 한나라(漢), 당나라(唐), 송나라(宋), 명나라(淸)와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정도 지속하다 멸망해간 수십개의 군소 한족(漢族) 국가가 1,000년 남짓 중원(中原)을 지배했을 뿐이며, 나머지 기간 동안 이민족의 나라인 몽골족의 원나라(元), 만주족의 청나라(淸), 요나라(遼), 금나라(金), 그리고 다양한 유목민족들이 중원을 지배했으며 이는 "중원의 역사는 이민족(異民族)의 역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기에 한족의 입장에서는 오랑캐의 나라가 중원을 지배할 수 없다는 화이사상(華夷思想을 갖게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제법상 "간도협약"에 관한 문제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북한 통일 이후 예상되는 한·중 국경 및 영토문제에 있어 중국의 동북 3성이 중국영토라는 논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급조된 "억지프로젝트"라고 명명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것은 곧 고구려사가 중국의 변방사라고 규정하고 역으로 논리를 대입시키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바로 한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외교적 마찰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에서도 나서서 "동북공정은 한국의 고대사 연구자료들과 논리를 분석해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남북통일 이후 예상되는 국경·영토분쟁에 대비하며, 조선족 사회의 혼란을 예방하려는 국가 차원의 동북아전략”이라고 당당히 규정하고 있다. 중국 정부와 집안시(集安市)는 외국인, 특히 한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 가운데 광개토태왕비, 장수왕릉, 국내성 유적 등 고구려 유물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2004년 7월 1일 집안의 "광개토대왕비 등 43곳을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 그리고 귀족의 무덤"이란 제목으로 등재 확정. 7월 3일 일반인에 공개). 또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고구려는 물론 고조선, 부여, 발해 등 동북 3성 지역의 역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고구려

고구려가 이룬 화려한 문화와 역사는 (고)조선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의 근간이며, 오늘날을 사는 후손들에게 커다란 자부심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구려의 유구한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고구려는 졸본(卒本) 지방에서 BC 37년 개국하여 AD 668년까지 28명의 황제, 70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반도 중북부와 만주전역을 근거지로 하여 연해주(沿海州) 지역, 중국 하북성(河北省)과 산동성(山東省), 북경 인근까지 넓은 영역을 차지했던 고대 제국(帝國)이다.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鄒牟, 朱蒙)는 BC 58년 북부여의 시조로 전해지는 해모수와 하백(河伯)의 딸인 유화(柳花)부인 사이에서 동부여(東扶餘)에서 태생하여 동부여의 왕궁에서 자랐다. 주몽이란 이름은 부여어(扶餘語)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뜻한다"고 전해진다. 동부여의 금와왕(金蛙王)의 일곱 왕자와 신하들의 위협을 눈치챈 어머니 유화부인은 주몽에게 멀리 떠나 큰 일을 도모하라고 당부한다. 주몽은 몇몇 측근들과 함께 동부여를 떠나 졸본부여(卒本夫餘)로 망명하였다. 그는 비류수(沸流水)가 흐르는 졸본(卒本)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 고구려는 일찍이 기마민족(騎馬民族)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주변 비류국(沸流國) 송양왕(松讓王)의 항복을 받아내고 해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키는 등 여러 부족국가를 정벌하여 영토를 넓혀 나갔다. 서기 3년(유리명왕/瑠璃明王 22년)에 압록강 유역의 국내성(國內城)으로 천도(遷都)하였으며 이후 선비(鮮卑), 양맥(梁貊), 황룡국(黃龍國) 등을 정벌하는 등 주변국과의 전쟁을 통해 더욱 강대해졌으며, 강한 리더쉽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팽창정책을 펼쳐갔다.

태조왕(太祖王:재위 53∼146) 때 부터 고조선의 고토수복(故土收復)의 기치를 내걸고 현도군을 쳐서 변방으로 축출하였고, 옥저(沃沮)와 동예(東濊)를 복속시켜 동해안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는 왕위의 형제상속제를 확립하였으며 종래의 부족국가적 형태에서 중앙집권적 형태로 정비하여 고대국가체제를 갖춤으로써 고구려의 실질적인 시조가 되었다.

고국천왕(故國川王:재위 179∼197)은 형제상속제에서 부자상속제(父子相續制)로 왕위계승법을 바꾸었으며, 5부의 행정구역을 설정하는 등 체제정비를 단행하여 왕권이 더욱 강화되었다. 동천왕(東川王:재위 227∼248) 때는 중원(中原)에서는 위(魏)·촉(蜀)·오(吳) 3국의 대립시기였는데, 요동군(遼東郡)의 실권자 공손연(公孫淵)과 통교하고 위(魏)나라를 견제하는 등 외교술을 발휘하였으며 태조왕 이래 숙원이었던 현도를 공략하여 복속시켰다. 고구려는 7년간에 걸친 위나라와의 패권다툼에서 위(魏)나라의 장수 관구검(?丘儉)에게 치명타를 안기며 압승을 거두게 되지만, 관구검의 반격을 받아 수도인 환도성(丸都城)이 함락되는 등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고구려는 곧 국력을 회복하여, 위나라의 거듭된 공격을 격퇴했다.

봉상왕(烽上王) 때는 선비족(鮮卑族)인 전연(前燕)의 모용외(慕容?)의 침입을 두 차례 받는 등 위기를 겪다가 313년 미천왕(美川王:재위 300∼331) 때는 서안평을 점령하였고, 낙랑군(樂浪郡)을 멸망시키고 대방군(帶方郡)을 정벌하여 한반도에서 한사군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하는 등 고구려는 꾸준하게 성장해 나갔다.


중국의고구려역사왜곡및중국역사편입시도중단촉구결의안
○ 발의연월일 : 2003. 12. 12.

[ 주 문 ]

지난 7월 북한 고구려벽화고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보류된 바 있다. 히라야마 이쿠오 일본 유네스코 친선대사 등 일본측 인사들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였고 유네스코 조사단도 방문 보고서에 ‘완벽하다(full and complete)"고까지 평가한 고구려 벽화고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보류 결정은 우리의 문화적·역사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보존의 측면에서도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러한 북한 고구려벽화고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보류 결정이 문화유산 가치 평가차원이 아닌 고구려 역사 왜곡을 위한 중국의 반대때문이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2001년 북한이 고구려벽화고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후 고구려의 중국 역사편입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은 북한 고구려벽화고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해 지속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해왔다.

나아가 중국은 2004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개최될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WHO) 제28차 총회에서 중국내 고구려벽화고분을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국내성 고구려벽화고분군 주변의 민가 700여 채와 시청건물을 철거하고 문화유산을 복원하였으며 2004년 6월 심사 전까지 1,000여 채의 민가를 추가로 철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중국은 지난 2002년 2월에는 이른바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하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마련, 진행하고 있다.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5년간 200억 위안(약 3조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하여 중국 동북부의 역사와 현황을 연구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중국의 부총리급인 사회과학원 원장과 국무원 원장을 고문으로 하고 있다.

연구인력 또한 사회과학원 부원장의 책임하에 동북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의 사회과학원과 대학 연구소 등이 망라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중국정부의 일련의 행위는 고구려사 등을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 학계 및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실현되는 경우 고구려사는 물론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중국 역사로 귀속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 경우 우리 역사는 시간적으로 반이상이 사라진 2,000년에 불과하게 되며 공간적으로도 한반도 중부 이남으로 국한되어 한국사의 근간은 물론 민족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것은 또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연고권으로까지 확산되어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 개입의 역사적 명분이 될 수 있으며 통일 이후 간도를 중심으로 한 국경분쟁의 주도권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버금가는 우리의 역사주권에 대한 침해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역사주권 및 민족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중국정부의 고구려 역사 왜곡 및 중국 역사로의 편입시도를 즉각 중단토록 촉구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무런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에 우리 국회는 고구려는 물론 발해의 역사 또한 엄연히 우리 민족의 역사임을 천명하며 정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첫째, 정부는 즉각 중국 정부의 고구려 역사 왜곡 및 중국 역사 편입 시도에 대해 엄중 항의할 것을 촉구한다.

둘째, 정부는 문화관광부, 외교통상부, 교육인적자원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국의 역사왜곡 시도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셋째, 정부는 나아가 북한 정부와 협의하여 중국의 역사왜곡 시도를 중단시키기 위한 남북공동대책 마련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고구려(高句麗) 땅을 되찾고 싶지않은가?

 

서울시장이 누가 되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고구려 땅 되찾기 축제를 한 판 벌여 봄이 어떨가???

 


 글 참조: 고구려역사보전회 홈페이지         사진: KBS2 드라마 광대토태왕 화면

태그  고구려, 광개토왕, 구리시, 고구려역사보전회, 광개토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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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on   2011-09-14 18:08 수정삭제답글  신고
옛날 왕들은 이렇게 땅을 넓혔는데.. 근세의 우리 지도자들은 우리땅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오히려 빼앗기려 드니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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