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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온 편지 (15)
더페스티벌    2011-05-02 죄회수 4,143 추천수 2 덧글수 1  인쇄       스크랩     신고

 

▲ 찻잎을 따고 귀가하는 차농들, 이 찻잎으로 밤새도록 삼백도가 넘는 무쇠 솥과 씨름할 게 뻔합니다.

 

4월이 떠나고 있습니다.



T.S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서러워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가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감싸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올해의 4월만큼 화려했던 봄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난 겨울은 세기적 한파로 온 대지가 동토로 변했었는가 하면

구제역과 AI로 죄 없는 동물들이 무자비한 죽음으로 내 몰려야만 했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독재정권에 맞서 자유의 봄을 갈구했지만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피 흘림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엘리엇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은 황폐해져 가고만 있는데

4월은 그런 것도 모르고 계속 꽃만 피워내고 있는 봄을

시샘한 듯 합니다.


이처럼 죽음과도 같았던 가지에서 꽃을 피워내고

동토의 땅에서 봄을 만들어 내었기에

올해의 4월은 더 찬란했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봄도 5월이면 이미 초여름처럼 뜨겁게 대지를 달굴 것이고

이내 숨쉬기조차 힘든 8월에 접어 들 것입니다.


우주적 대 변혁의 속에서 초연함으로 이 행복을 지켜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돌담 안으로 들여다 본 세상) 

(돌담은 세상을 안과 바깥으로 구분짓는 경계선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하나 되는 끈입니다)

 

 


돌담, 가난과 저항의 양면적 상징성



근래에 저의 뇌리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시는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시 같이 느껴지지 않는 시입니다.


7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저는 개발과 반공이 쏟아내는

홍수와도 같은 구호 속에서 자랐습니다.


새벽마다 마을앰프방송으로 통해서 울려 퍼지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 새마을 노래와

동네이장의 구수한 입담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었습니다.


당시 마을 앰프방송은 세상 돌아가는 일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매스미디어였습니다.


동네 경조사, 부역, 궐기대회 일정 뿐 아니라

라디오나 티비가 부족했던 시기라 종종 몇 시간씩 라디오방송을

생중계 해 주기도 했었습니다.


어렸던 저도 종종 신작로 자갈 포장과 동네 길 확장과 같은

부역에 동원되기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를 회상 해 보면 새마을 노래에도 담겨 있듯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그리고 가장 획기적인 사업은 ‘돌담 허물기’였습니다.


돌담은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집도 돌담이 있었으나 여름 장마철만 되면 무너지기 일쑤였고

해마다 아버지께서는 돌담 쌓는 일에 이력이 난 상태였습니다.


원수 같은 돌담을 허물고

시멘트 벽돌로 반듯하게 쌓아놓은 최신형담장은

유행처럼,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었습니다.


당시는 온 나라가 정상만 바라보고 올라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고지를 점령하고 하산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하찮은 들꽃이 내려올 때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원수와도 같았던 돌담이 보물로, 향수로, 위로의 선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농촌자치단체 관광홍보물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돌담이 등장하고

걷기코스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요즘,

돌담을 배경으로 삼은 아름다운 걷기 코스는 여행 최신 트랜드로 잡혀가고 있습니다.



우리 하동에도 몇 개 마을에는 아직도 돌담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특히 슬로시티로 지정된 악양은 거의 모든 마을에 원형 그대로

마을의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습니다.


나훈아의 히트곡이었던 ‘물레방아 도는데’의 주무대였던 고전면 성평마을에도

완벽하지는 않으나 일부분 돌담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성평마을은 당대 최고의 작사가인 정두수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나훈아는 돌담을 노래한 이 노래가 대 히트되어 스타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원수와도 같았던 돌담이 스타를 탄생시킨 아이러니입니다.

 

 

30년 전통을 지켜온“유죽자 할머니”의 별미식당 죽집


먹거리가 비교적 풍부하다고 하는 하동이지만 여느 직장처럼

점심시간은 늘 선택의 고민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요즘은 재래시장 살리기 차원에서 자치단체마다 시장살리기에

갖가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래시장 또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이겨내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닙니다.


시장살리기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은 차후에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화창한 봄날,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아름다운 날씨에 죄 짓는 것처럼 느껴질 때

점심시간을 맞아 재래시장 죽집을 찾았습니다.


장날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붐비지만

무싯날 점심은 비교적 한가했습니다.


“팥죽 4그릇, 칼국수 2그릇 주세요”


“그렇게 따로 시키면 늦게 나오고 복잡하니까 한가지로 통일해 ”


할머니가 아무렇지도 않는다는 듯이 쏘아붙입니다.


잠시 논의를 한 후


“그러면 팥죽으로 통일해서 여섯그릇 주세요”


이내 팥죽이 나왔습니다.

반찬은 열무김치와 물김치 딱 두 가지였습니다.


어릴 적 먹던 그 맛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원조팥죽이었습니다.

이런 할머니집에서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할머니의 입담이 더 별밉니다.


“할머니 장사 몇 년 돼셨나요?”

“30년 됐어”


“하루에 몇 그릇 팔아요? ”

“왜 그걸 물어? 세금 많이 매길려고?”


“우리는 세금 매기는 사람 아니예요”


“세금 매기지마!”

“장날에는 200그룻, 무싯날은 그 반이야”


한 그릇에 3천원 짜리니 장날은 60만원, 평일은 30만원의 매상이 오른다는

뜻이다.


저는 죽을 다 먹은 후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왜 사진을 자꾸 찍어!”

“보기 좋아서요”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왜 이름을 물어, 유 죽자야!”


순간 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폭소를 터뜨리니


“왜 웃어?”

“할머니가 죽 장사 하니 이름이 죽자네 하하하”

일순간 식당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알고 보니 할머니 이름은 유숙자고

출생신고 할 때 면사무소에서 잘 못 기재하여 “죽자”로 되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웃음이 났습니다.


“할머니 연세는요?”

“퇴직할 거야! 80이 다 됐어”


“퇴직요? 아직 정정하신데요?”

“더 하면 뭐하겠어. 동숭이 맡아서 할거야”


이미 죽자 할머니는 동생에게 장사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동생과 동업중에 있었습니다.



재래시장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SSM규제조례를 만들고 갖가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지만

재래시장은 갈수록 힘들기만 합니다.


하지만 유죽자 할머니와 같은 고향 맛이 있는 한,

재래시장은 사람들의 사랑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하동에 오시거덜랑, 유죽자 할머니의 “별미식당”에서

고향 한 그릇 드시고 가세요.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조문환, 하동시장, 돌담길, 유죽자, 별미식당, 하동죽집, 하동읍내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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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Mom   2011-05-03 16:13 수정삭제답글  신고
[하동에서 온 편지]의 애독자입니다. T.S. Elliot의 시(詩)까지 설명해 주시는 센스에 감동합니다. 할머니의 정(情)이 듬뿍 담긴 재래시장의 문화보존에 힘 써야 할 것 같네요. 하동읍내시장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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